그림자 고孤

찬란한 빛의 속성을 가지고도
빛이라 불리지 못하는
그림자의 일생은 단조롭고 다채롭다
석양에 맞서 길어진 그림자에
노을이 비치는 날이면
자신의 은밀한 속살을 드러낸다

구름을 타고 세상을 거닐며
달그림자가 되어 지구를 덮고
때론 성현의 곁에서 진리를 실천하며
아이의 우는 모습부터 주검의 굳은 모습까지
천의 얼굴을 가진 불멸의 모습에서
형상을 찾기 힘든 신의 그림자로 추앙을 받는 모습까지...

그러한 그도
외로울 때가 있다
그녀가 고개를 돌려
자신을 바라보지 아니할 때,
암흑으로부터 잉태된
그림자 없는 짙은 어둠에 묻히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