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에 젖은 산수유 잎에 앉은 청개구리가 꼼짝없이 수 시간을 가만히 있는 이유, 줄 그어진 산수유 잎 색과 닮은 초록의 열매가 달랑거리는 이유, 이웃한 벚나무에 허물을 벗지 못한 매미 주검의 이유, 뉴스 속 기후로 떠도는 빙하 위 북극곰의 이야기, 높아 가는 실업률에 포함된 사회초년생, 가장으로 삶을 버텨가는 중년, 명품 가방을 주제로 아줌마들이 수다 떠는 이유, 독백이 어울리는 수도승이 중얼거리고, 목줄을 뽐내는 견공 주인이나 도시를 헤매는 유기견의 이유, 오디션을 탈락한 이유가 부모의 탓이라며 성형외과를 기웃대는 이유, 신호 꺼진 교차로 교통경찰의 수신호 이유, 무너질 몸을 이끌고 노인이 생수를 메고 가는 이유, 으앙 울며 아이가 탄생을 알리는 이유, 책임과 의무를 간절히 바라는 기도의 이유, 찌든 가난 탓으로 돌리며 담배를 무는 이유, 살지 못해 죽고 죽지 못해 사는 이유.

인생(人生)

때로는 꼭 흘러야 하는 강물처럼
절벽에 둥지를 튼 새처럼
스스로 말미암는 이유로
알 수 없는 길을 간다

바위가 바람에 닳아 가듯
연유(緣由)를 알기 어렵고
호수 물결에 달이 부서지듯
흔적을 찾기 어렵고
구름이 봉우리에 잠시 머물듯
서로의 기약(期約)이 어렵다
시간보다 빠르게 살아도
운명을 거역하기 어렵고
세월보다 느리게 살아도
인연은 먼저 와있다

터벅터벅 가는 사람도
달려가는 사람도
낯선 길에 서 있다

혹시

잠시 멈추어 섰는가?

그럼 보라!

보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