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말이 없던 관봉여래(冠峰如來)
말이 없는 나이가 되고 나니
말없이 앉은 분이나
여기 서서 말이 없는 이나
서로 벗하여도 허물이 없는 것 같다.

오른 봉우리라서
반드시 내려가야 하는 길
한 계단 한 계단에 마주치는 이들은
약사여래 약사여래 호명하며 오르지만
어릴 때부터 보아온 탓인지
여래라는 이름이 오히려 어색하게 느껴진다.

어리광부릴 때는 어머니 손에 이끌리고
한때는 고독에
이제 연인의 손에 이끌리니
이 몸을 향해 보리 서원(誓願)을 다함이라.
그러고 보니
석좌상(石坐像)이 말이 없는 이유는
서원이 가득해서이고
이 몸은 번뇌가 가득한 이유라.

시큰거리는 무릎에
난간 잡고 잠시 쉬는 시간
가볍게 내려가는 연인(戀人)을 보니
어리광부리던 내 모습이 저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