君子의 劍 (무딘 날의 이야기)


옛날 옛적에
현명하지만 인색한 대장간 장인(匠人)이
한 사람의 무사(武士)를 위해
날이 없는 칼 한 자루를 만들었다.

모양은 앞뒤를 알 수 없고
무거워 아무나 들 수가 없고
날이 없으니 풀 하나 벨 수가 없으며
날이 없으니 숨길 칼집도 없었다.
이에 칼을 휘두르지 않았다.

누구나 죽어가는 세월에
죄지은 자는 대가를 치르고
복지은 자는 대가를 받았다
넘치거나 모자람 없는 시간이 그렇게 흐르니
사람들은 군자(君子)의 검이라 칭하고
황제(皇帝)가 취하여 휘두르자 천자(天子)의 검이라 우러렀다.

이름도 알 수 없는 장인의 칼 한 자루가
칼날도 없이 세월을 보낸 까닭에
구경꾼이 모인
진열장 유리 앞에는
정의를 세운 '군자의 검'이라고 쓰여있다.  

유리 진열장 속의 무딘 칼을 보니
무딘 날이
붉은 녹에 떨어져 나가
오히려 날을 세우고 있으니
무딘 옛 흔적을 찾기는 어렵다.  

간직하는 일이란
세월의 무던함에도
붉은 녹이 날을 세우듯 하니
본래의 모습은 간직하기 어렵다.
하여, 무딘 날의 이야기는 쉬 알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