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왔나 봅니다

밭에 심어놓은 콩이 여물고

들깨 향기가 더하고

땅속 고구마도 여물어가고

나무의 감 중에는 홍시로 변한 것이 보입니다

님이 앉아 계신

금당(金堂)의 마루도 저녁이면 차가워

단단해지는 가을입니다

이와 같이

여물어 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생기는 것을 보면

아직도 부족함이 아득하지만

가을을 걸어가는 나그네는

하늘과 같아지는 한량없는 마음으로

바람처럼 부는 심아(心我)를 도반 삼아

천리 길을 가는 일이

끊어진 길을 걸어가듯 하겠지만

같은 길을 바라보는 들 국(菊)들이 있기에

가는 길 심심치 아니합니다

당신께 반하기를 철없는 아낙 같지만

사라진 물길 같은 긴 세월과

세상을 담은 물방울이 속한 넓은 하늘이 있어

당신의 미소와 언어를 알 수 있고

당신이 말 하시는 미소를 전할 수 있겠지요

들국 향기로 간혹 전해지는

투명한 공간을 헤집고 나타나는 미소를

누가 있어

당신의 언어로

당신이 하시는 말씀을 들어 알 수 있을까요

긴 하루가 짧아진 요즘

나그네와 가을은

당신의 품을 이렇게 걸어가고 있습니다

아직도 부족함이 아득하지만

작은 욕심으로 님께 바라기는

부산했던 들판이 텅 비고

하얀 눈이, 패인 가을 자국을 메우면

혹여 누가 있어

살 저미는 바람에라도

님의 언어 듣기를 바래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