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호 슬픈 사람 이여

내가 사랑한 사람 이여

어찌 시방 이 밤이 짧은 줄 모르는가

어찌하여 비망록에 그대 이름을 올리는가

잘 보시오

난 밤도 아니요

그렇다고 아침도 아니요

그렇다고 어둠도 아니요

그렇다고 태양도 아니오

그러니 슬픔 속에 어둠도 태양도 담을 수 없는 것이 아니겠소

저 차가운 바닥에

저 답답한 지붕 아래

저 어둠 속에 숨 쉬는

저 고통이 바로 내 것이 아니겠소

어찌 당신 것이 되겠소

당신이 내 것으로 위장하고

내 것으로 삼으면

그렇다고 당신 것이 되겠소

이보시오

이 슬픔이 그대 것이 된 적이 한 번이라도 있소

당신 슬픔이 내 것이 된 적이 한 번이라도 있소

삶은 누구에게나 진실한 것이라오

진실하다는 것은 착각이 없고

당신의 위로는 도움이 되지 아니한다는 말이요

슬픔은 삶이 고플 때

먹는 애잔한 양식이라오

수다처럼 팔고 사는 것이 아니라

김장독처럼 묻고 사는 것이라오

생각을 품고 들뜬 당신이여

생각도 분명 나이를 먹소

니체의 理性論도 나이를 먹고

부처의 自性論도 나이를 먹고

예수의 사랑론도 나이를 먹소

그러니 슬픔도 꼭 나이를 먹어야 하지 아니하겠소

아직도 가슴이 애잔하여

바위처럼 단단하면

하늘에서 내리는 촉촉한 비도

눈처럼 쌓이고 쌓여서 녹지 아니하면 어이하겠소

들뜬 이성으로

언어를 듣지 못하는 당신이 아니겠소

울지 않는 눈에 눈물이 고이고

왼쪽 가슴에 침묵이 잠들 때쯤 하여

잔인했던 봄이지만

풀들이 덮이고 꽃들이 피는 봄을

어린나무는 준비해야 하오

가지에 달린 심장으로

다시 뛰어야 한단 말이오.

''언어를 듣지 못하는 당신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