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 반 고흐

그림자가 반쯤 드리워진
비 내리는 공터를 보고 있다.
오가는 발자국은 텅 빈 캔버스를 채우지 못하고 있어 붓끝의 기억을 빌리기도
덜 깬 취기에 기대기도 하지만
캔버스는 우주보다 넓다.
사실은 캔버스 위를 비 오는 날 걸어가는 행위나 붓끝에 생각을 담아 그리는 일은 쉬운 일이다.
그녀는 지금 비를 멍하니 보고 있다.

복숭아 베어 물며 시작한 후덥지근한 장마는
만분의 만 박자로 내리고 있다.
길지만 선명한 박자는 그녀가 푹 빠진 이유다.

가끔이지만 내려온 구름이 차양처럼 말려 올라갈 때 늘어진 캔버스는 당겨지며 짧은 비명을 내지만 기나긴 장마에 소용이 없다.
결국 이젤은 접히고 그녀의 화구통에 들어간
비명,

텅 빈 터가 장마에 더 텅 빈다.

공터는 비명이다.
인생도 비명이지.

시선은 공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녀는 빈센트 반 고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