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롱나무의 불내선不內禪.

창문 밖 그가 사라졌습니다.
여름보다 긴 꽃이
피고 지고를 반복하는 까닭에
넋을 놓고 바라보던 기다림이 지겨운 듯 훔쳐보던 시선을 데리고 담장 너머를 떠났습니다.
긴장할 바는 아니지만, 도둑의 자태가 사라진 곳에서 아무도 없는 침묵이 자리를 잡자, 여름은 매미가 날개를 비비는 듯한 떨리는 심장 울음소리를 멈추었습니다.
더운 바람에 잠을 설치며 얇은 속옷만 걸친 새벽은 계절의 순환법칙을 더는 거역 할 수 없는지 어스름 속에 감추어 두었던 동굴을 개봉합니다.
한때는 금광이었던 동굴에서 뛰쳐나온 도도하고 싸늘한 바람은 분명 계절을 처음 만난 순전한 바람입니다.
하지만, 나오자마자 동굴의 기억을 잊어버리는 까닭은 씨알 바람의 숙명입니다.